요즘 일본에서 매일같이 관련 소식이 들려오는 뉴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일본 최대 아이돌 기획사, 쟈니스의 창업자인 쟈니 키타가와가 오랜 세월 동안 소속 아이돌과 연습생들을 상대로 성 착취를 일삼아 왔다는 것이 폭로 된 것인데요. 일본 사회에서는 알음알음 퍼져있던 이 이야기가 자국 언론이 아닌 영국 BBC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일본 사회에 대해, 일본 문화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사건이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목차
쟈니스는 어떤 곳?
쟈니스(쟈니즈, ジャニーズ, Johnny’s Entertainment)는 창업자인 쟈니 키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 본명 John Hiromu Kitagawa)의 이름을 딴 아이돌 기획사입니다. 남자 아이돌만 전문으로 하는 특이한 형태의 기획사로, 일본의 남자 아이돌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곳인데요. 사업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인기 남자 아이돌’은 모두 쟈니스 소속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업계 독점을 이어온 기업입니다.
외국인 입장에선 ‘연예계를 독점하는 게 가능하냐?’란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 불가능한 것을 50년 가량 지속해 온 곳이라 ‘썰’, ‘음모론’ 등의 이름으로 숨긴, 구린 이야기가 많은 회사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60년이 넘는 업력과 연 1000억 엔으로 추정되는 매출에도 비상장 상태인 기업으로, 주식회사 전환 이래 쭉 창업주 가족이 주식을 100% 보유하고 있는 가족 기업이기도 합니다.
쟈니가 사망하기 전엔 모든 중요한 사안을 쟈니 키타가와와 쟈니의 누나인 후지시마 메리(藤島メリー泰子)가 함께 결정했다고 하는데요. 메리는 쟈니가 사업을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사업을 이끌어 온 사업 파트너로, 쟈니스의 모든 ‘접대’는 그녀의 작품이라고 전해집니다. 메리는 쟈니 사망 2년 뒤인 2021년에 폐렴으로 사망했고, 그녀의 딸인 후지시마 쥬리(藤島ジュリー景子)가 쟈니스의 주식 100%를 가진 회사의 유일한 주주이자 사장으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쟈니스 주니어는 무엇?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선 ‘쟈니스 쥬니어’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쟈니스는 크게 데뷔조와 주니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두 그룹을 나누는 기준은 ‘CD 데뷔’로, 쟈니스 소속 연예인들은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 자신의 이름이나 소속 그룹 이름으로 음반 발매한 것을 ‘데뷔’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쟈니스 주니어는 일종의 ‘쟈니스 소속사의 연습생’인 셈입니다.
쟈니스 쥬니어가 한국 기획사의 연습생과 다른 점이라면 매체 노출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는데요. 쟈니스 주니어는 주니어 내에서 그룹을 꾸리기도 하고, 잡지 촬영이나 방송 출연이 있기도 합니다. 데뷔한 선배들의 백댄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선배들의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신분은 연습생이지만 매체 노출 기회가 많다보니, 드라마나 예능 등을 계기로 데뷔한 선배들보다 더 큰 인기와 인지도를 얻는 주니어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인기를 얻으면 염원하던 데뷔도 가까워지게 됩니다.
당연히 수 백명에 이르는 주니어들 중 인기를 얻거나 데뷔하는 주니어는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 소수에 속하기 위해선 케미 좋은 멤버들과 그룹을 결성하고, 매체에 많이 노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기회의 결정권은 쟈니 키타가와가 쥐고 있었습니다. 데뷔 역시 쟈니의 눈에 들어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쟈니 키타가와가 긴 세월 범죄를 저지르는 원천이 되었고, 피해자 대부분은 쟈니스 주니어로 활동할 때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쟈니스 주니어로 가장 많이 입사하는 나이대는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이고, 어린 나이에 입사하는 경우 5, 6살에 입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꿈을 좇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수 많은 어린 소년들이 어른의 도움도, 공권력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고 만 것입니다.
쟈니 키타가와는 누구?
쟈니 키타가와는 1931년 미국 LA에서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고, 초등학교, 중학교는 일본의 관서 지방에서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수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재일 미국 대사관에 취업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일본에 돌아온 후 1960년대, 30대에 들어설 무렵의 쟈니 키타가와는 미군 주둔지에서 소년 야구단을 만들어 야구를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당시엔 일본에서도 야구는 ‘신문물’이었던 데다가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직접 가르쳐준다는 소식에 엄청난 인기였다고 하네요.
그러다 어느 날, 쟈니 키타가와는 야구단 소속의 중학생 4명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갔다고 합니다. 그 영화가 바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로,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중학생 4명은 쟈니 키타가와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 최초의 ‘아이돌 그룹’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결성된 그룹이 바로 쟈니스 엔터테인먼트의 첫 그룹인 ‘쟈니스(ジャニーズ)’였다고 하네요.
그렇게 연예계 사업을 시작한 쟈니 키타가와는 70년대엔 고 히로미(郷ひろみ), 80년대에는 ‘긴기라긴(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의 주인공 콘도 마사히코(近藤真彦), 우리나라의 소방차가 롤모델로 삼았던 소년대(少年隊), 일본에 롤러스케이트 붐을 가져온 히카루겐지(光GENJI), 90년대에는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가 소속되어 있던 국민 그룹 스맙(SMAP), 2000년대엔 SMAP을 잇는 국민 아이돌로 자리매김한 아라시(嵐)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승승장구 하게 됩니다.
그러다 2019년 7월 1일,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진 쟈니 키타가와는 87세의 나이로, 7월 9일 사망합니다. 쟈니 키타가와의 장례는 ‘송별식(お別れの会)’이라는 이름으로 도쿄돔에서 치러졌고, 그 자리에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조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시작, BBC의 다큐멘터리
그렇게 일본 연예계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생을 마감한 것 같았던 쟈니 키타가와에 대한 평가를 바꾸게 될 다큐멘터리가 방영됩니다. ‘J-POP의 포식자(Predator: The Secret Scandal of J-Pop)‘라는 제목으로 2023년 3월 7일, 영국 BBC에서 방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큰 반향을 불러옵니다. BBC의 언론인, 모빈 아자르(Mobeen Azhar)가 약 1년여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이 다큐멘터리는 쟈니 키타가와가 몇 십년간 수 백, 혹은 수 천명의 소년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일삼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건 그 자체도 굉장히 충격적이지만,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일본 사회의 모습도 상당히 충격적인데요. 피해자들은 “이런 피해를 받았지만, 쟈니 키타가와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했고, 지금도 그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선 그루밍 범죄의 전형적인 반응이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어지는 일본 대중과의 인터뷰와 연결해 보면 이런 반응이 과연 그루밍 범죄로 인한 것인지 의심하게 되더라구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일본의 시민들은 쟈니 키타가와의 소년 성착취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모빈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쟈니 키타가와가 죽은 지금,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 “저도 게이인데, LGBTQ가 인정받지 못하는 현재 일본 사회에서 마이너스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를 표면화해서 추궁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0대 초등학생, 중학생의 어린 소년들이 추악한 늙은이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하는데 우선은 덮어두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일본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으면 일단은 덮고보자”하는 건 일본의 국민성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하고, 문제 제기를 할 때 어떤 시선을 받을 지도 상상이 쉽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관련 질문을 하는 기자의 이야기에 전혀 놀라지 않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쟈니 키타가와의 성착취는 일본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인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습니다.
카우안 오카모토의 폭로와 피해 내용
BBC의 다큐멘터리가 조금씩 화제가 되던 4월, 쟈니스의 아이돌 연습생 신분인 ‘쟈니스 주니어’에 속해있던 카우안 오카모토(カウアン岡本)가 외국의 특파원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게 됩니다. 이 기자회견에서 카우안 오카모토는 자신이 중학생이던 15살에 20회에 걸쳐 쟈니 키타가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며 피해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카우안 오카모토 이전에도 폭로는 꾸준히 있었고, 카우안 오카모토도 폭로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2022년 11월 경에도 모 유튜버와의 인터뷰를 통해 거의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 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이 더 큰 파장을 불러온 것은 적절했던 타이밍과 증거 때문이었습니다. 카우안은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이 찍은 쟈니 키타가와의 자택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고, 자신이 쟈니 키타가와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모습을 찍은 영상도 가지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카우안 오카모토는 이제까지의 피해자들과 비슷한 내용의 피해 사실을 밝혔는데요. 피해 내용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피해는 대부분 쟈니 키타가와의 자택에서 일어났다.
* 쟈니 사장의 집을 ‘합숙소’라 불렀던 시기도 있었고, 맨션의 2개층을 한꺼번에 빌려 한층은 자신의 자택으로, 한층은 합숙소로 사용하기도 했던 듯하다. - 쟈니 키타가와가 “OOO, 이제 자야지”라고 하며, 목욕할 것을 권한다.
- 쟈니 키타가와가 자택 내 자쿠지에서 거품 목욕을 손수 시켜준다. 쟈니 사장은 이걸 ‘의식’이라고 불렀다.
- 다 씻고 나면 침대가 여러 개 놓인 방에 들어가 눕는다. 옆 침대에 다른 주니어가 있어서 안심했다.
- 쟈니 키타가와가 방을 돌아다니다 방에 들어와 자신에게 다가왔다.
-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다리를 주무르다 손이 위로 올라오고, 피해를 당했다.
* 후에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쟈니 키타가와는 젊었을 때는 공격 포지션으로, 늙어서는 수비 포지션으로 소년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 당한 다음 날이면, 1만엔~5만엔 사이의 금액이 베개 옆에 놓여져 있거나, 쟈니 키타가와가 직접 건네줬다.
- 행위에 대해 “싫다”고 거부한 다음 날이면, 쟈니 키타가와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고, 일에서도 불이익이 생겼다.
- 피해를 입을 당시의 소년들의 나이는 11세~15세 정도로, 고등학교를 입학하면 당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쓰면서도 굉장히 역한 내용인데, 카우안도 그렇고, 피해자들은 덤덤하게, 어떤 사람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기도 하더라구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해 내용을 설명하며, 카우안 오카모토는 “쟈니스는 쟈니 사장 마음에 들어야 데뷔할 수 있다. 데뷔하기 위해 이러한 피해를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쟈니스 소속 아이돌은 대부분 쟈니 사장에게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카우안의 기자회견은 BBC 다큐멘터리 공개와 맞물리게 되면서, 다행히 묻히지 않게 되었는데요. 후에 카우안이 밝힌 바에 따르면, BBC와 사전 접촉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우연이었다고 합니다. 외국 언론을 이용한 것은 이전에 해당 사건을 보도했었던 주간문춘 기자의 제안을 따른 것이었다고 하네요.
사건을 키운 쥬리 사장의 성명 발표
외국 언론을 중심으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자 기사 한 줄 적지 않던 일본 언론도 조금씩 관련 보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보도가 새어나오기 시작하자 이제까지 해오던 것처럼 모른 척, 아닌 척, 은근슬쩍 넘어갈 줄 알았던 쟈니스가 의외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이제까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오너 일가가 직접 카메라 앞에 선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전 녹화한 짧은 영상이었지만요.
처음으로 직접 카메라 앞에 선 쥬리 후지시마는 1분 여의 짧은 영상에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대응 방안은 차후에 서면으로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했는데요. 서면으로 공개한 회사의 입장은 ‘사죄’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당시 쟈니스 사무소의 입장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당사자인 쟈니 키타가와가 이미 망자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실 여부는 밝히기 어렵다.
- 피해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고려해 조사 하거나 위원회도 조직하지 않을 계획이다.
한 마디로 “모르겠고, 대충 넘어가고 싶다” 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며, 폭로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관련 사안에 대해 오래 전부터 보도를 해오던 ‘주간문춘’부터 공영 방송 NHK까지 피해자들의 폭로 내용을 보도하며 사건은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