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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돌 기획사 쟈니스의 창업자, 쟈니 키타가와의 소년 성범죄 사건-2

이전 포스팅에서 쟈니스라는 연예 기획사가 어떤 곳인지, 그런 쟈니스의 창업자 쟈니 키타가와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리고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 정리했었습니다. 그리고 쟈니 키타가와의 성범죄가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던 시점부터 2023년 5월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는데요. 이번 포스팅은 그 이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시간순으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발방지특별팀 & 쟈니스 성가해 문제 당사자 모임 발족

쟈니스가 “나는 몰랐고, 사건에 대해 조사할 의지도 방법도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낸 후, “나도 같은 일을 당했다”고 고백하는 피해자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2023년 6월, 이제껏 협조 잘해주던 언론도 조금씩 관련 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하고, 대충 뭉개고 넘어가려고 하던 쟈니스는 눈치가 보였는지 제 3자로 구성된 ‘재발방지특별팀’을 구성하게 됩니다.

가해자가 사망한 현 시점에서 여론이 쟈니스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실 규명’이었지만, 쟈니스가 발족한 ‘재발방지특별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규명의 역할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 것입니다. 가해자가 이미 죽었는데, ‘사건 방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쟈니스성가해당사자 모임의 발족 모습
쟈니스 성가해 문제 당사자 모임 발족 당시 모습 / 사진 출처 : https://www.google.co.kr/amp/s/www.sponichi.co.jp/society/news/2023/08/05/kiji/20230805s00042000067000c.html%3famp=1

그와 더불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쟈니스 성가해 문제 당사자 모임(ジャニーズ性加害問題当事者の会)’이 발족됩니다. ‘쟈니스 제국’으로도 불릴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쟈니스를 개인들이 상대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한 것입니다.

UN과 재발방지특별팀의 조사 내용 발표

일본 국내에선 사실 규명이 지지부진하던 무렵, 국외에선 다시 사건을 키울 만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유엔의 산하기구 중 하나인 ‘기업과 인권 리소스센터(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re)’에서 2023년 7월에서 8월에 프로젝트 팀을 일본에 파견하는데, 이 프로젝트 팀의 조사 안건 중 하나로 쟈니 키타가와의 성착취 문제가 포함된 것입니다.

정식 보고는 2024년 6월이지만, 조사가 끝난 8월에 프로젝트 팀은 쟈니 키타가와의 성가해 문제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됩니다. 그 결과, 쟈니 키타가와는 긴 시간동안 수 백명에 이르는 피해자에 성범죄를 일삼은 것으로 보이며, 이 내용에 대해 일본 정부가 투명하게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히게 됩니다.

UN TF팀의 기자회견 모습
조사 내용 발표 중인 프로젝트 팀 / 사진 출처 : https://mainichi.jp/articles/20230804/k00/00m/040/149000c

유엔의 개입으로 일본 사회가 가장 싫어하는 ‘국제적 망신’으로 일이 커져갈 기미가 보이자 여론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 정확한 내부 움직임은 알 수 없으나 유명무실해 보이던 재발방지특별팀이 꽤 의미있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재발방지특별팀은 조사를 통해 쟈니 키타가와가 1950년대부터 2010년에 이르는 수 십년간 수 백명의 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음을 파악하였으며, 쟈니스 사무소 역시 이를 인정한다는 것을 발표한 것 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범죄 사실을 회사 전체가 묵인했으며, 메리 후지시마는 새어나가지 않도록 은폐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입니다.

그리고 재발방지특별팀은 쟈니스에게 사실 인정과 사죄, 회사의 조직 구조 변경, 법적 책임 이상의 보상을 요구했는데요. 그 결과, 쟈니스 사무소와 쥬리 사장 등이 기금을 내고, 당사자 모임과 전문가, 쟈니스가 각각 인원을 파견한 ‘피해자구제위원회’가 설치됩니다.

기름을 들이부은, 9월 7일 기자회견

유엔의 발표 이후로도 관련 보도는 계속되고, 7, 80대의 일반인 피해자까지 등장합니다. 쟈니 키타가와가 20대부터 80대까지 평생을 아동 성범죄자로 살았던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쟈니스에 대한 여론은 나날이 악화되어 갔고, 쟈니스는 이런 여론에 기름을 들이붓는 기자회견을 열게 됩니다.

쟈니스의 사장인 후지시마 쥬리와 당시 쟈니스 소속 연예인 중 최고참이었던 소년대 출신의 히가시야마 노리유키(東山紀之), 쟈니스 소속 V6의 멤버 출신이자 쟈니스 쥬니어들이 소속되어 있는 쟈니스 아일랜드의 사장인 이노하라 요시히코(井ノ原快彦), 이 3명이 기자회견을 가집니다. 4시간이 넘는 기자회견에서 쟈니스 측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아래 7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회사와 후지시마 쥬리 개인은 쟈니 키타가와의 성범죄 일체를 인정하고 사과한다.
  2. 피해자에게 법적 책임 이상의 금전적 보상을 할 예정이다.
  3. 후지시마 쥬리는 9월 5일자로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 히가시야마 노리유키를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한다.
  4. 하지만 후지시마 쥬리는 여전히 지분 100%의 유일한 주주일 예정이다.
  5. ‘쟈니스’라는 사명은 변경할 예정이 없으나 내부 프로세스를 변경해 다른 회사가 되겠다.
  6. 쟈니 키타가와의 성범죄 사실은 3명 모두 ‘소문’으로만 들었다.
  7. 쟈니스와 방송국의 촌탁은 우리만으로는 해결 안되니 함께 고민하자.
쟈니스 기자회견 모습
2023년 9월 7일 쟈니스의 기자회견 모습(왼쪽부터 이노하라 요시히코,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후지시마 쥬리) / 사진 출처 : https://sirabee.com/2023/09/08/20163154107/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서 벗어난 세사람의 이야기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과 그 기자회견을 본 대중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되는데요. 쟈니스의 기자회견에 대한 비판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1. 오랜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은 연예인 2명을 각각 사장직에 앉혀 그 이미지를 활용해 먹는 게 쟈니스의 ‘진정한 사과’인가?
  2. 정확한 피해 내용 파악이 아닌 ‘금전적 보상’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과연 적절한가?
  3. 히가시야마 노리유키는 과거 후배에게 성추행 했다는 것이 알려진 인물인데, 히가시야마가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 할 수 있는가?
  4. 가해자의 조카인 후지시마 쥬리가 계속 돈 벌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5. 전무후무한 아동 성범죄자의 이름을 간판에 달고, 진정한 반성이나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6. 후지시마 쥬리는 가해자의 친조카이자 쟈니스의 경영진이었고, 히가시야마와 이노하라는 각각 45년, 35년 정도 쟈니스에 소속되어 있던 최고참들이었는데 해당 사건을 정말 ‘소문’으로만 들었는가?
  7. 쟈니스가 촌탁을 일절 하지 않으면 끝나는 문제인데 뭘 더 고민하자는 것인가?

위 내용 중 대부분은 기자회견장의 기자들이 직접 세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제대로 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3번의 히가시야마의 후배 성추행 문제에 대해 히가시야마는 “했을 지도, 안 했을 지도 모른다.”라는 말같지 않은 말로 사실상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습니다.

실종된 증언자, 시라하세 스구루 부사장

위의 9월 7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시라하세 스구루(白波瀬 傑) 부사장을 찾는 목소리가 많았는데요. 시라하세 스구루는 90년대부터 쟈니스의 주요직을 맡고 있는 인물로, 후지시마 쥬리 사장 체제에서는 부사장을 맡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세간에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에서 시라하세 스구루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쟈니의 성범죄 사실을 법정에서 증언을 한 ‘인증된 목격자’이기 때문입니다.

1999년, 주간지 <주간문춘>은 쟈니 키타가와의 성범죄를 포함한 아동 학대 관련 보도를 14주 연속 보도했고, 이에 쟈니스는 주간문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합니다. 이 소송은 도쿄고등법원에서 주간문춘의 일부 승소로 끝이 났는데요. 이 판결로 주간문춘이 보도한 내용 중 성범죄 부분을 포함한 많은 부분이 사실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송에서 시라하세 스구루는 쟈니 키타가와의 성범죄 행위가 있었음을 직접 증언한 인물이었습니다.

시라하세 스구루 쟈니스 부사장
시라하세 스구루 / 사진 출처 : https://rscnews.com/sirahasesuguru-keireki/

그리고 시라하세 스구루는 이 소송 이후로도 쟈니스의 경영진이었기 때문에 쟈니 키타가와의 범죄 행위를 증언할 수 있는, 증언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더불어 방임 혹은 적극적인 은폐로 피해를 키운 가해자이기도 하기에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그의 사실 인정이나 사과는 없었고, 시라하세는 부사장직에서 내려와 인수인계 후 2023년 10월에 쟈니스를 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너져 가는 쟈니스 제국

알맹이가 없는 9월 7일의 기자회견 이후, 여론은 엄청나게 싸늘해집니다. 싸늘해진 여론에 어느 나라든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광고계부터 손절을 시작했습니다. 쟈니스 아이돌을 모델로 기용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이 하나둘씩 “계약 기간 후, 계약 갱신은 없다.”는 의견을 내며, 연일 관련 보도가 전해집니다. 특히, 한국에선 주류로 유명한 음료식품 기업, 산토리의 니나미 타케시(新浪剛史) 사장은 “쟈니스 아이돌을 모델로 세우는 것은 기업이 아동학대를 (있어도 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건 국제적으로 비난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한편, 쟈니의 성범죄 사실 은폐에 적극 가담했던 방송계는 업계의 인권 인식의 개선을 우선 약속합니다. 그리고 쟈니스 소속 연예인과의 방송 기획 역시 검토해보겠다며 손절 간보기를 시작합니다.

특히,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쟈니스 소속 연예인과의 신규 방송 계약은 당분간 없다”고 단언했고, 실제로 2023년 홍백가합전엔 쟈니스 소속 연예인은 아무도 출연하지 못했습니다. 홍백가합전에 쟈니스 소속 연예인이 한팀도 나오지 않은 건 4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